
3월 27일 기준 3만 7185명이 대피했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은 1만 6700명이며, 산불 진화 중 헬기 추락으로 순직한 기장과 진화현장에 투입됐던 산불 감시원 등 사망자는 이미 27명에 달하고 있다. 4개 시·군을 초토화시킨 화마는 최소 여의도 면적의 103배, 서울 면적의 절반에 해당하는 3만ha 산림지역이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화마로 의성 운람사와 천년고찰인 고운사가 전소되었으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국가 지정문화재인 가운루와 연수전을 비롯한 주요 전각들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모습에 참담함을 가눌 길 없으며, 우리의 역사와 문화 한 페이지가 사라진 느낌이 엄습해 온다. 영남지역 5개 사찰에서 40여 동의 전각과 요사채 등이 전소되었다고 한다.
고운사는 불교 내 불교 활동을 조율하고 종단의 정책을 지역에 구현하는 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 지역의 문화·환경적 가치를 지키는 데 앞장서 왔으며, 봉정사, 부석사 등도 총괄하는 경북 대표 사찰이다. 주민들도 화마로 인해 한순간 삶의 터전을 잃었고 현재는 입을 옷도, 먹을 음식도, 잠잘 곳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대국민 동참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소된 국보 연수전은 고종이 기로소(耆老所, 70세가 넘는 정이품 이상 문관을 예우하려고 설치한 기구)에 들어간 것을 기념해 지은 왕실 건물이다. 1902년에 고종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자 새로 지었다가 이번 화마로 전소되고 우측토담만 일부 남아있다. 필자가 30일 고운사에 취재 갔을 때, 아직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고운사(高雲寺 681년 신라 신문왕 1년)는 의상대사가 처음 만든 절로, 신라 말기 최치원이 입산해 여지(如智),여사(如事) 두 대사와 함께 가허루(駕虛樓)와 우화루(羽化樓)를 세웠다. 이후 최치원의 호를 따 고운사(孤雲寺)로 이름을 고치면서 가허루가 가운루로 바뀌었다. 가운루(駕雲樓)는 구름 위의 누각이라는 뜻인데 계곡 위에 우뚝 서 있는 누각 형식의 건물로 통탄스럽게 전소됐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관람하지 못할 보물을 의성산불로 영원히 잃어버렸다. 고운사 입구에 세워진 최치원 문학관도 전소됐으며, 이날 자세히 살펴보니 중건도 어렵게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일반화재현장을 취재해보면 건물 일부라도 남아있는데, 불길이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고 개울가 잡초까지 모조리 불타버렸다.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다면 광화문이 아니고 안동과 의성으로 집결해 화마에 신음하는 내 나라 내 형제를 돕는 길이 우선이다. 정치인들은 현장에 와서 사진만 찍고 떠날 것이 아니라 난민 신세로 전락한 형제들을 도와야 한다. 간교한 무리 들이 모여 정치 음해나 하고 국가를 파행의 길로 몰고 갈 것이 아니라 화마에 쓸려간 이재민 심신을 치유해 줘야 한다.

가축을 기르던 축사와 농기구는 검은 숮 덩이로 변해 버렸으며, 평생을 바쳐 이루어 놓은 집과 가재도구까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불타버렸다. 이럴 때 국가가 필요한 것이고 예산이 필요한 것이다. 영혼까지 앗아간 의성산불, 최악의 산불 속에 이재민들은 실의를 잃고 허공을 바라본다. 이날 고운사를 찾은 이방인들 얼굴엔 실망과 개탄스러움이 교차하는 표정 들이었다.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 국가는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의성산불이 아니 도깨비불이 어떤 교훈을 줬을까, 화재도 실화와 방화가 있다. 실화는 과실로 인한 화재이며, 방화는 일부러 불을 지르거나 놓는 것이다. 요즘처럼 건조한 날씨에 화재로 인한 피해가 어떤지 이제 국민 모두 충분히 겪었을 것이다.
국회는 화재 관련법을 개정할 단계에 진입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실화든 방화든 중벌에 처해 국민 모두에게 최고의 경각심을 조성할 필요가 절실하다. 작은 불씨 하나가 인명과 재산, 문화재까지 싹쓸이해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데, 이 부분을 국회에서 다시 논의해야 하지 않겠나, 필자 주장이기에 앞서 공론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의성산불로 유명(幽明)을 달리하신 분들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기도하며, 화마로 사찰을 잃은 고운사는 멀지 않는 장래에 복원되도록 정부·국민 모두 협조해 경북 제일의 불교 도량이 재탄생하길 학수고대 하겠다. 최치원 문학관도 복원돼 의성 고운사를 찾는 불교도들에게 환희의 장을 활짝 열어줬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