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늙어가고 있다. 청년은 떠나고 아이 울음은 줄었으며 빈 점포는 늘고 학교는 학생을 걱정한다. 한때 14만 명을 넘었던 제천 인구는 이제 12만 명 선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역의 시계는 다급하게 돌아가는데 정치하는 방식은 오래된 사진처럼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선거 때마다 새로운 제천을 약속한다. 지역 발전과 국가기관 유치를 외치고 중앙정치에서 쌓은 힘을 지역을 위해 쓰겠다고 말한다. 선거가 끝나면 유명 정치인을 부르고 나란히 앉아 악수하며 사진을 찍는다. 행사가 끝나고 손님이 돌아간 뒤 제천에 무엇이 남았는지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도시는 늙어가는데 정치만 장수한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식에도 전국적으로 알려진 정치인이 등장했다. 영화제가 공식적으로 초대한 인사는 아니었고,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지역구 국회의원의 초청으로 제천을 찾았다고 밝혔다. 정치인이 지역축제를 찾은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영화제를 알리고 관광객 한 명이라도 더 불러온다면 지역에도 도움이 된다. 문제는 도시가 처한 시간과 정치가 보여준 장면 사이의 간격이다. 지금 제천에는 유명 정치인의 방문보다 더 절박한 일이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제2차 공공기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이 있다. 거칠지만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막겠다며 총파업까지 꺼내 든 노동조합을 보면 이 말부터 떠오른다. 공공기관은 직원들이 서울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만든 직장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의 세금과 법률로 설립해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도록 맡긴 기관이다.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기관을 지방으로 옮기겠다면 직원은 이전한 근무지에서 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서울을 떠나는 것이 도저히 싫다면 본인이 다른 직장을 선택할 문제이지, 기관 전체를 서울에 붙잡아 둘 권리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350여 곳을 검토해 올해 4분기 이전계획을 발표하고 2027년부터 이전에 착수할 방침이다. 반드시 수도권에 남아야 하는 기관을 제외하고는 이전 대상에 포함한다는 ‘수도권 잔류 최소화’ 원칙도 세웠다. 그러자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 공공기관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금융시장과 기업이 수도권에 몰려 있어 기관이 지방으로 내려가면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전문인력이 이탈한다는 주장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본사 이전 때 노조와 사전에 합의할 것을 요구하며 총파업까지 내걸었다. 묻지 않을
단양을 찾은 관광객은 여덟 개의 풍경을 안내받는다. 도담삼봉과 석문, 구담봉과 옥순봉을 둘러보고 사인암과 하선암, 중선암과 상선암을 지나면 단양의 절경을 모두 본 것처럼 여긴다. 관광안내서도 그렇게 말하고 사진첩도 거기서 끝난다. 그런데 단양에는 관광안내서에 좀처럼 실리지 않는 아홉 번째 풍경이 있다. 석회석을 캐낸 산과 시멘트 공장의 굴뚝, 폐기물을 실어 나르는 차량과 공장 주변에서 살아가는 주민의 일상이다. 단양강의 유람선과 만천하스카이워크는 관광도시의 앞모습이고, 시멘트 산업과 폐기물 사용을 둘러싼 논란은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뒷모습이다. 단양군은 오랫동안 ‘대한민국 관광 1번지’를 외쳐왔다. 산 좋고 물 좋은 고장이라는 설명도 빠지지 않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단양의 산수는 굳이 행정이 자랑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문제는 관광객이 카메라에 담는 단양과 주민이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단양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데 있다. 관광객에게는 팔경을 권하면서 주민에게는 팔자려니 견디라고 한 것은 아닌가. 관광버스는 절경을 따라 움직이고 산업용 차량은 공장을 향해 달린다. 한쪽에서는 청정관광을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시멘트 생산과 폐기물의 연료·원료 사용이 이어진다
시멘트산업 사회공헌기금을 둘러싼 논란은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다. 2020년 시멘트 지역자원시설세와 민간기금을 놓고 지역사회가 갈라졌고, 2022년 제천·단양 기금관리위원회가 출범한 뒤에는 위원 구성과 지원 대상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2024년 총선 후보자 토론회에서는 기금위원장과 지역구 국회의원의 관계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따지는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올해는 감사 청구로 이어졌다. 전국 시멘트 생산지역 주민과 시민·환경단체 등 37개 단체, 주민 440명은 지난 20일 시멘트산업사회공헌재단의 기금 조성·배분·집행과 지역위원회 운영 전반을 감사해 달라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감사 청구 대상에는 제천과 단양을 비롯해 강릉·동해·삼척·영월 등 6개 생산지역이 포함됐다. 감사 청구인들은 기금이 주민 건강과 환경개선보다 견학과 나들이, 체육행사 등에 편중됐다고 주장한다. 지역 기금관리위원이 자신과 관련된 사업의 제안과 심사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현재는 감사 청구가 접수된 단계다. 감사원이 감사를 시작하면 사업별 집행액과 이해충돌 여부도 재단의 결산자료, 지역위원회 회의록과 정산서 등을 조사해 청구인들이 제기한
“실종자는 돌아오지 않았는데 경찰 기록에서는 먼저 사라졌다.” 제주에서 실종된 장미란 씨는 석 달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경찰이 찾지 못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찾지 않았다. 장 씨는 지난 5월 12일 밤 제주시 한림읍의 거주지를 나선 뒤 연락이 끊겼다. 사흘 뒤 남자친구가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지만 사건은 약 2시간 30분 만에 끝났다. 담당 경찰관은 “장 씨와 연락이 됐고 안전하다”고 가족에게 설명했다. 자신의 위치를 가족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가족은 경찰을 믿었다. 살아 있고 안전하다는데 더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조금 지나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며 기다렸다. 그 기다림이 두 달을 넘겼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은 정반대였다. 담당 경찰관과 장 씨가 통화한 기록은 없었다. 안전을 직접 확인했다는 객관적인 자료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 내부 실종자 관리 시스템에서는 장 씨의 자료가 해제되거나 삭제된 정황까지 드러났다. 살아 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경찰 전산망에서 먼저 사라진 것이다. 그사이 폐쇄회로TV 영상은 보존기간이 지나 대부분 지워졌다. 실종 직후라면 확인할 수 있었던 휴대전화 위치와 차량 이동, 목격자
“삼권분립은 세 권력이 제각각 왕이 되라는 제도가 아니다.”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는 서로 독립하면서도 견제와 협의를 통해 국가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국회가 다수 의석만 믿고 밀어붙이면 입법독주가 되고, 대통령이 인사권과 거부권만 앞세우면 행정독재가 된다. 법원도 사법부 독립을 방패로 설명과 협의를 거부한다면 사법권력의 독선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권한이 있느냐가 아니라, 왜 지금 이렇게 행사했느냐가 문제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과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대통령과 직접 만나지 않은 서면 제청이었다. 대법원은 대통령과의 면담이 성사되지 않았고 서면 제청 방식은 청와대 민정수석 측과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면담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제청 형식을 둘러싼 공방을 넘어 대통령실과 대법원이 후보자 선정에서 끝내 합의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서면 제청은 불법이 아니지만, 합법이라고 모두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
유시민 작가는 “우리는 증축을 원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 작가가 말한 ‘우리’는 누구인가. 더불어민주당 당원 전체인가, 이재명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인가, 아니면 자신과 정치적 판단을 공유하는 일부 강성 지지층인가. 지난 17일 치러진 민주당 당대표 선거는 이 질문에 하나의 답을 내놨다. 김민석 후보는 선호투표를 거쳐 54.08%를 얻어 정청래 후보를 꺾었다. 민주당원들은 팬덤의 요구에 머무는 정치보다 이재명 정부의 안정과 성공 가능성을 선택했다. 정치인을 지지한 사람이 그 정치인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를 단순히 김민석과 정청래 두 사람의 승패로만 봐서는 안 된다. 정 후보는 강한 개혁과 선명성을 앞세웠고, 김 후보는 당정 안정과 집권여당의 확장성을 강조했다. 당원들은 누가 더 강하게 말하느냐보다 누가 이재명 정부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느냐를 판단했다. 김 후보가 처음부터 압도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충청권에서는 불과 0.44%포인트 차이로 앞섰고, 강원·대구·경북 경선까지 두 사람의 누적 격차도 1.48%포인트에 그쳤다. 어느 한쪽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접전이었다. 승부가 갈린 곳은 호남이었다. 김 후보는 호남에서 57.54%를
지방정부가 업체와 계약을 체결한다. 업체는 계약한 물품을 납품하고 담당 공무원은 검수를 마친다. 세금계산서와 지출결의서도 갖춰졌다. 계약대금은 등록된 업체 명의의 계좌로 정확하게 지급된다. 회계시스템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래다. 그런데 대금 지급이 끝난 뒤 업체가 받은 돈의 일부를 현금이나 상품권, 고가 물품 또는 향응의 형태로 계약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에게 되돌려준다면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당사자 계좌에 돈을 직접 보내지 않고 가족이나 지인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다면 정부의 전산망은 이를 포착할 수 있을까. 행정안전부가 지방정부의 수의계약 몰아주기와 공금 횡령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놨지만, 가장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여기에 있다. 정부가 놓친 가장 위험한 사각지대는 정상적인 계약과 계좌 뒤에 숨은 ‘백마진’이다. 정부 대책의 핵심은 계약 횟수 제한과 지출 시스템 통제다. 기초 지방정부는 동일 업체와 연 5회 또는 2억 원, 광역 지방정부는 연 7회 또는 3억 원을 초과해 1인 견적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없게 된다. 사업자가 직접 계좌를 등록하고 대금을 청구하는 전자대금청구시스템 e호조+빌도 의무화한다. 거래처명과 예금주가 일치하지 않으면 지출
2024년 10월, 대한민국 문학은 새로운 역사를 썼다.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한국문학은 세계 문학의 중심에 우뚝 섰다. 정부는 국가적 경사라며 축하했고, 지방자치단체는 현수막을 내걸었으며, 언론은 앞다퉈 K-문학의 시대를 선언했다. 한 명의 작가가 이룬 성취는 대한민국 문화의 자부심이 됐고, 우리는 세계가 인정한 한국문학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아 그 자부심을 무색하게 만드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강 작가와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온 서울의 독립서점 '오늘책방'이 문을 닫기로 한 것이다. 운영을 포기한 이유는 문학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건물 매각으로 임대차 계약이 종료됐고, 새로운 공간을 찾으려 했지만 서울의 높은 임대료와 운영비는 작은 독립서점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결국 책방은 독자와의 작별을 선택했다. 물론 누군가는 시장경제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건물주는 재산권을 행사했고, 임대료는 시장이 결정한다. 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문화를 단지 시장의 논리로만 판단하는 순간 도시는 가장 먼저 기억을 잃는다. 오래된 책방이 사라지고, 작은 공연장이 문을 닫고, 독립
2027년 적용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70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보다 380원(3.7%) 오른 금액이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주 40시간 기준 223만6,300원이다. 숫자만 보면 인상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을 둘러싼 분위기는 '인상'보다 '타협'에 가깝다. 그것도 어느 한쪽도 만족하지 못한 절충안이다. 노동계는 생계비와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라고 말한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물가 상승으로 외식비와 주거비, 공공요금까지 오르면서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체감 생활은 더욱 팍팍해졌다는 주장이다. 최저임금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이라는 점에서 더 과감한 인상이 필요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경영계는 여전히 부담이 크다고 호소한다.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인건비 상승을 가장 먼저 걱정한다. 이미 경기 침체와 소비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 결국 채용을 줄이거나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고민이다. 결국, 이번 최저임금은 노동계도, 경영계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최종안의 차이가 불과 30원이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표결로 결론이 났다. 숫자는 정해졌지만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