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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유배지에서 관광지로… 영월, ‘왕과 사는 남자’가 던진 질문

 

한 달 만에 940만 명. 천만 관객을 눈앞에 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속도는 단순한 영화 흥행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에 가깝다. 스크린 속 단종의 유배 이야기는 관객의 감정을 자극했고, 그 여파는 곧장 강원 영월로 이어졌다.

 

주말이면 영월로 향하는 도로가 붐비고, 영화 촬영지 인근 상권은 활기를 띤다. SNS에는 “영화 속 그 장소”를 찾았다는 인증 사진이 줄을 잇는다. 비극의 역사로만 기억되던 유배지가 ‘감성 여행지’로 전환되는 장면이다.

 

영화 한 편이 지역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답은 ‘그 이후에 무엇을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여기서 멈추면 일시적 유행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영월은 사실 준비된 지역이었다. 단종이라는 역사 자산, 청령포와 장릉 등 문화유산, 동강과 별마로천문대 등 자연 관광자원을 꾸준히 축적해왔다. 여기에 최근 조성·강화되고 있는 영월 관광센터의 기능 확대는 이번 흥행과 맞물려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관광센터는 단순한 안내소가 아니다. 지역관광 동선을 설계하고, 방문객 데이터를 분석하며, 체류형 콘텐츠를 기획·연계하는 플랫폼 역할을 맡는다. 영화 촬영지 방문을 단발성 소비로 끝내지 않고, 역사 해설 프로그램·체험형 콘텐츠·지역 상권과 연결하는 ‘체류형 관광’으로 확장하는 허브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흥행은 영월이 오랫동안 고민해온 체류 시간 확대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스쳐 가는 관광지’에서 ‘하루 더 머무는 도시’로의 전환은 지역 관광정책의 핵심 과제였다. 영화가 만들어낸 관심을 관광센터가 구조화하고, 숙박·음식·체험 프로그램으로 연결한다면 일회성 방문은 반복 방문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브랜드 재정립이다. 영월은 그동안 ‘단종의 유배지’라는 다소 무거운 이미지에 머물렀다. 그러나 장항준 감독의 연출과 유해진, 박지훈 등의 연기가 만들어낸 서사는 ‘고난 속 인간미’라는 새로운 감정 코드를 덧입혔다. 이는 관광콘텐츠로 재가공하기에 충분한 자산이다. 관광센터가 이 스토리 자산을 현대적 감각의 전시·야간 프로그램·스토리텔링 투어로 풀어낸다면, 영월은 과거에 머문 도시가 아니라 ‘이야기를 생산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물론 변수는 존재한다. OTT 시대에 영화의 열기는 빠르게 식을 수 있다. 대형 경쟁작이 등장하면 관심은 분산된다. 결국, 관건은 ‘영화가 끝난 뒤’다. 관광센터가 중심이 되어 지역 상인회, 문화예술단체, 청년 창업가들과 협업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 영화 속 공간을 지역 경제와 연결하는 구체적 모델을 설계할 수 있는가이다.

 

영화는 불씨를 지폈을 뿐이다. 그 불씨를 지속 가능한 관광 산업의 불꽃으로 키우는 일은 지역 정책의 몫이다. 유배지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해석은 바뀐다. 그리고 해석이 바뀌면 도시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영월은 스크린이 비춘 기회의 한가운데 서 있다. 이번 열풍이 ‘잠깐의 북적임’으로 끝날지, ‘지속 가능한 관광도시’로 도약하는 전환점이 될지는, 준비된 정책과 실행력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