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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가 보스 부산 칠성파 이강환

칠성파 두목 이강환 생전 모습(사진=이미지 캡쳐)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나이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강환은 학창시절부터 사고를 치면 어머니가 해결해주면서 자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경주에서 호텔경영을 하던 박 모 씨에 따르면 “어머니가 요정을 하면서 법조계 아는 사람들이 많아 그때마다 잘 해결해 줬다” 고한다.

 

이런 환경으로 성장한 후 그는 부산 남포동 유흥가을 접수하며 당시 국내 양은이파(조양은) 서방파(김태촌) 등과 국내 3대 조폭 계열에 이름을 올리고 일본 야쿠자와 의형제를 맺은 뒤 자금도 지원받으면서 세를 과시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강환은 소아마비 장애가 있어도 전국구로 활동한 것은 깡이 좋다는 것이 특징이다. 주먹이 좋아 보스로 군림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사실 조폭 세계에서 보스 노릇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조폭 식구들을 이끌고 지내야 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당시 이강환은 국내 마약(히로뽕) 최대 제조 기술자 최재도, 이항순과 손잡고 부산유흥가와 완월동 매춘 촌에 마약을 팔아 상당한 이익을 취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사건으로 1980년도 이들은 중형을 선고받고 모두 수감생활을 했다.

 

영화 친구는 칠성파 범죄 집단을 모티브 한 흥행물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칠성파는 1957년 이강환의 손위 동서가 조직을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조직을 성장시킨 사람은 이강환이며 1970년대부터 나이트클럽, 가라오케, 유흥주점, 슬롯머신 등을 장악하고 서울진출을 하면서 오비파 이동재를 넘어서는 전국최대 규모 조폭으로 세를 확장했다.

 

부산에는 신20세기파가 있어도 칠성파를 넘어서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마약(히로뽕)은 염산 아세틸렌에서 추출하는데 부산에서 마약 제조기술은 당시 최재도가 제일 잘 했다고 전해진다. 히로뽕에 중독되면 마누라도 팔아먹는다고 하는 무서운 마약이다.

 

히로뽕을 맞다가 돈이 떨어져 맞지 못하면 환청이 오는데 길 가다가 전봇대를 붙잡고 ‘여보 사랑해’ 하면서 막 껴안고 흐느끼며 울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증상은 중독상태로 국가에서 요양시설로 보낸다. 죄명은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향정신성의약품)’로 중형에 처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 박지만 현 회장이 한때 고통의 세월을 보냈으나 지금은 변호사 출신 훌륭한 아내와 사업가로서 잘 지내고 있다.

 

어둠의 자식들로 살아오면서 주먹도 세월 앞에 어쩔 수 없는 듯 지병으로 지난 7월 부산의 모 대학 병원에서 80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칠성파 조직원도 한때는 150명 이상 움직이며 부산지역 사법 당국을 긴장시킨 당시 국내 최대 조폭 조직으로 군림하며 부산 유흥가을 손에 넣고 있었지만, 지금은 와해 되고 흔적만 남아 있다고 한다.